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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두 여자의 정체성과 소유의 심리에 대해서

by 돔디 2025. 3. 29.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줄거리

진주는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고요하고 예측 가능한 하루, 누군가와 깊게 관계 맺지 않는 방식으로 버텨내는 일상. 그렇게 혼자 살아가던 어느 날, 그녀의 자취방에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온다. 소연. 단정하고 무심한 태도, 차가운 듯 보이지만 감정이 읽히지 않는 인물이다. 처음엔 딱 그 정도의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지낸다. 근데 진주의 시선은 점점 소연에게 고정된다. 말투, 손짓, 향수 냄새, 먹는 방식 같은 사소한 요소들에 점점 민감해지고, 어느 순간 모방하듯 따라 하게 된다. 진주의 감정은 '호기심'이나 '친밀감'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건 동경과 욕망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고, 일종의 동일화 욕구로 흘러간다.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 진주는 소연이 입던 속옷을 몰래 꺼내 입는다. 이 행위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상징이자, 인물의 내면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속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다. 신체에 가장 가까이 닿는 사적 공간이고, 일종의 경계선이다. 그걸 공유한다는 건, 단순히 그 사람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잠식하고 싶다는 감정이다. 이후로도 진주는 점점 더 소연의 자리를 잠식해 들어간다. 그녀의 행동, 공간, 태도 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소연은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게 더 불안하게 만든다. 명확한 감정의 피드백 없이 무력하게 흘러가는 관계 속에서, 진주의 내면은 무너지고, 감정은 고립된다. 결국 소연은 집을 떠난다. 갈등의 폭발 없이, 조용히. 그리고 진주는 다시 혼자 남는다. 영화는 이 장면을 큰 사건처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평범하게, 처음과 같은 톤으로 일상을 보여준다. 똑같아 보이지만, 진주는 이전과는 다르다. 속옷이라는 경계를 넘어 타인과 얽혔던 감정은 진주의 내면에 분명히 흔적을 남겼다. 이 영화는 명확한 사건 중심 구조가 아니다. 감정의 결, 심리의 변화, 정체성의 흐림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아주 구체적인 사물과 공간을 통해 표현한다. 대사가 없고, 침묵이 많고, 반복되는 행동들로 심리를 말한다. 진주의 손동작, 문 열기, 서랍 여닫기 같은 행위들이 리듬처럼 반복되면서 무의식적인 심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결말은 열려 있다. 소연은 사라지고, 진주는 남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론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체성은 정말 나에게서만 만들어지는 걸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게 타인을 통해 나를 구성하고 있을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서의 속옷의 의미

제목 그대로 속옷은 이 영화의 핵심 상징물입니다. 속옷은 신체에 가장 밀접한 사적 물건이고, 개인의 정체성을 감싸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주가 소연의 속옷을 입는 장면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흡수하고 싶은 동일화 욕망의 시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장면 하나가 이 영화 전체 메시지를 압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요소로 생각이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이해보다는 느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그런 제게 있어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감정이라는 이름의 미세한 진동들을 조용히 건드리는 작품이었습니다. 대사가 많지도 않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오래 붙들렸습니다. 속옷이라는 상징 하나로 인물의 심리와 정체성, 타인에 대한 욕망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이 작품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결핍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진주가 소연의 속옷을 입는 순간이었습니다. 굉장히 사적인 물건이자, 누군가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속옷이라는 오브제를 이렇게까지 설득력 있게 상징화한 작품은 드물다고 느꼈습니다.

진주는 소연의 삶, 태도, 분위기를 온몸으로 닮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멋있어 보이거나 부러운 감정을 넘어서, 그녀의 존재 자체가 진주에겐 자신이 되지 못한 가능성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죠. 그렇기에 같은 속옷을 입는다는 설정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내 것으로 삼고 싶은 욕망의 표출로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행위가 영화 속에서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일상처럼 그려진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충동적으로 저질러버린 행동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감정이 자연스레 흘러나온 듯한 느낌이었죠. 그래서 관객인 저 역시 그 장면을 보며 불편함과 공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 모순된 감정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연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녀는 영화 내내 특별한 설명 없이도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신경이 쓰이고, 말이 없는데도 존재감이 크죠. 진주가 소연에게 끌린 것은 단순한 동경이라기보다는, 그녀를 통해 이상화된 자아를 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주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소연을 더 닮고 싶어 했고, 닮기 위해 그녀의 일상을 관찰하고, 모방하게 되죠. 때로는 상대를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방식대로 해석해버릴 때 더 강한 집착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집착은 그래서 더 위험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특히, 소연이 진주의 행동을 눈치채면서도 큰 반응을 하지 않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갈등이 폭발하거나 감정적인 대치가 나왔을 법한데, 이 영화는 오히려 침묵을 선택하죠. 그 침묵이 진주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관객인 저 역시 불편하게 만듭니다. 감정의 확인이 없는 관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방식이랄까요.

이 영화는 대사가 적고, 움직임이 많지 않습니다. 공간도 제한적이고, 인물들의 감정 표현도 크지 않죠. 그런데 이상하게 몰입이 됩니다. 저는 그 이유가 바로 반복과 침묵이라는 무의식의 언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주는 반복적으로 소연의 속옷을 바라보고, 만지고, 입습니다. 이 반복은 일종의 의식처럼 보이는데, 단순히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방식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들을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무섭고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공간 연출도 훌륭했습니다. 같은 집 안인데도 진주의 방과 소연의 방은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조명, 색감, 카메라의 거리까지도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듯했죠. 마치 우리가 타인과 함께 있어도 각자의 고립 속에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듯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진주는 다시 혼자 남고, 그 어떤 것도 분명하게 결론짓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열려 있는 결말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느꼈습니다.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어딘가 불편하고 아프게 남는 감정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음에 오래 남더군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자극적인 소재보다 감정의 결을 더 중요하게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소유와 동경, 자아의 불안정함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조용하고 섬세하게 풀어낸 이 영화는, 보면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차분히 밀려오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감정의 가장 사적인 부분을 꺼내어 보여주는 이 작품은, 분명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만약 관계에 지친 적이 있다면, 타인을 너무 닮고 싶었던 순간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한 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