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셔가의 몰락(넷플릭스 오리지날) 줄거리
넷플릭스 오리지날 미드인 어셔가의 몰락은 미국의 거대 제약 기업 '포춘' 가문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로더릭 어셔는 이 제국의 수장으로,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난 부와 권력을 축적해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자녀들이 하나씩 비극적으로 죽어간다는 현실과 마주한다. 시리즈는 이 모든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로더릭이 과거의 증인을 찾아가 고백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과거로 돌아가면, 젊은 시절의 로더릭과 쌍둥이 여동생 마들렌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고, 권력을 향한 갈망은 늘 그들의 유일한 연료였다. 그리고 끝내 그 욕망은 결국 어떤 '계약'으로 구체화가된다. 어떤 존재와 맺은 이 거래는, 일시적으로는 어셔 가문에 번영을 안겨주지만, 그 대가는 아주 천천히, 치명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시리즈는 로더릭의 여섯 자녀의 죽음을 하나씩 보여주며 단순한 공포나 초자연적 현상보다, 현대의 탐욕, 타락, 중독, 무책임 같은 키워드들을 강하게 밀어 넣어 장면들을 보여준다. 각 자녀들은 각각의 상징을 안고 죽어가고, 그 방식은 무섭다기보다는 기묘하고 불길하며, '이 죽음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것' 처럼 느껴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죽음이 "벌"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선택해온 것들의 총합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어셔 가문은 가족이지만, 누구도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붙잡지 않는다. 그들은 고립되어 있고, 스스로를 위해 싸우고,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인간 군상의 어두운 욕망은 고전 호러의 무대에 현대 자본주의의 냉혹한 얼굴을 겹쳐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시리즈 후반부로 갈수록 공포보다는 슬픔이 더 짙게 깔린다. 로더릭은 자신의 선택이 낳은 모든 결과를 목격하고, 그 기억을 끌어안은 채 증인 앞에 고백을 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죄의 자백'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외면해온 '죽음의 목소리'를 마침내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마지막 순간, 그는 결국 '거래'의 종지부를 찍는다. 어셔 저택이 무너지고, 가문의 피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 종말을 '파괴'가 아닌, 늦은 정의이자 조용한 해방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날 미드인 어셔가의 몰락은 단순한 공포 시리즈가 아니다. 이 작품은 유산과 저주, 인간의 선택과 대가, 그리고 권력의 끝에서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 긴 서사다. 정치, 사회, 가족, 윤리까지 모두 한데 끌어안은 이 미드는 결국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되갚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어셔가의 몰락 작품적 특징
어셔가의 몰락에서 보여주는 특징에 대해서 두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죽음의 연쇄가 아닌 '계약의 귀환'으로 읽히는 구조적 호러이다. 일반적인 호러 장르에서 연쇄적인 죽음은 대개 외부의 공포 요소에 의해 발생한다. 그러나 어셔가의 몰락은 이 모든 죽음을 단순한 '벌'이 아닌 '되갚음'으로 설계한다. 로더릭과 마들렌이 과거에 맺은 계약은 단지 초자연적인 장치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와 욕망 구조에 대한 비유다. 가문 전체의 몰락은 그 계약의 논리적 귀결이며, 각 자녀의 죽음은 그들이 선택해온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이 구조는 "죽음 = 서사의 끝"이 아니라, "죽음 = 인간이 외면해온 책임의 귀환" 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된다. 즉, 이 시리즈는 공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통해 '계약과 대가의 구조'를 해석하게 만드는 철학적 장르 해체물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단절 실험에서 볼 수 있다. 어셔 가문은 외형적으로는 혈연으로 얽힌 가족이지만, 실제 이 시리즈가 보여주는 건 감정적 단절과 불신의 극단이다. 각 자녀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표면적으로만 연결되어 있으며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어떤 정서적 교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전통적 가족의 의미를 비틀면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얼마나 비인간적인 선택이 가능해지는가'를 조명한다. 마이크 플래너건은 이 단절의 구조를 통해 단순히 공포스러운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피로 맺어진 관계는 과연 안전한가?' 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로더릭이 자식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느끼는 무기력과 무표정은 사랑의 상실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해진 관계의 파열음처럼 느껴진다.
어셔가의 몰락을 보고 난 후 감상평, 느낀점
어셔가의 몰락을 호주에서 같이 동고동락 했던 제임스라는 친구가 강력하게 추천을 해 줘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흔히 있는 스릴러, 공포물이겠지 하며 보기 시작했지만, 보다 보니 무섭기보단 쓸쓸하고, 끝나고 나서는 한참 동안 마음이 쓸쓸하니 공허함마져 멤돌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단지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선택했고, 그 대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를 보면서 가문이 무너지는 장면보다, 그 안에서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화려하고 잔인하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 깃든 정서들은 매우 인간적이고 고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자식들 개개인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은 공포의 클리셰보다는 삶의 공허함, 연결되지 못한 관계, 사랑 없는 권력에 대한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로더릭의 표정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점점 더 자신이 비어간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그가 자녀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저는 이상하게도 슬펐습니다. 그는 눈물도, 분노도 보이지 않는데도, 그 안에 너무 많은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누군가를 잃었지만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진짜 몰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저택이 무너지고, 그 모든 계약이 끝났을 때, 저는 이 이야기가 결국 정의와 복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유산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콘텐츠들이 죽음 자체를 모든 것의 마지막으로 그리지만, 어셔가의 몰락은 죽음을 끝, 마지막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처럼 그려냅니다. 죽음은 돌아오고, 말하고,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흔적 앞에, 사람은 결국 자신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게 어셔가의 몰락이라는 미드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자, 동시에 가장 슬픈 부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단순히 장르물로 분류하고 넘어가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포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가진 '회피', '죄책감',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어둡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꺼내 보여주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인생에서 내가 남긴 것이 뭘까,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들과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면, 그날 이 작품을 천천히, 마음으로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공포물이 보고싶지만, 마냥 스릴러, 공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운을 주고 작품을 접함으로서 뭔가를 얻기를 원한다면. 다들 생각이 많은 날, 한 번쯤 꼭 꺼내봐야 할 작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경고 같고, 기도 같고, 어쩌면 사과 같은 작품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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